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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채점을 하면, 선생님은 뭘 잃을까

요즘 학교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AI가 채점을 대신하니까 선생님들 일이 줄어들겠네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지난주 초등학교 선생님과 잠깐 대화를 나눴는데, 선생님 얼굴이 좀 묘했다. “일이 줄어드는 건 맞는데… 뭔가 이상하거든요.” 그 말에 자꾸 생각이 간다.

AI는 ‘점수’를 주고, 선생님은 ‘관계’를 주던 사람이었다

AI 채점 시스템이 처음 들어왔을 때 가장 신기했던 건 속도였다. 학생들이 쓴 글의 사실 확인(fact-checking)이나 기본적인 글쓰기 구조 같은 단순한 작업들을 AI가 번개같이 처리해버린다. 맞춤법, 문법, 논리적 흐름 같은 객관적인 기준들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어떤 AI 채점 도구 개발자는 자동 피드백 기능을 갑자기 제거했다고 한다. 왜? 학생들이 교사가 직접 쓰지 않은 AI 생성 피드백에 감사를 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치 선생님이 써준 조언처럼 받아들이는데, 실제론 기계가 만든 글이었던 거다. 그러니까 개발자는 깨달았다. “아, 이건 학생과 선생님 사이의 관계를 깨뜨리는 거구나.”

이게 핵심이다. AI가 빼앗아가는 건 ‘채점 시간’이 아니다. 선생님들이 잃고 있는 건 학생과의 의미 있는 상호작용이다. 그 피드백을 읽으며 “아, 선생님이 내 글을 읽으셨구나” 하는 느낌. 그리고 “왜 이렇게 썼냐”고 물으면서 학생의 생각 과정을 들어보는 대화. AI는 그걸 못 만든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의 과제물을 채점하고 있는 모습

AI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실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교육 연구자들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AI가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은 명확하다. 사실 확인, 구조 분석, 문법 검사 같은 것들이다. 단순하고 규칙이 있는 작업들 말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다르다. 추론(아이가 어떤 근거로 이런 결론을 내렸나), 판단(이 답이 정말 맞는지, 아니면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는 없나), 공감(이 아이가 왜 이렇게 썼을까,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창의적 소통(내 이야기를 아이가 이해하게끔 어떻게 풀어서 말할까). 이런 것들 말이다.

AI 채점 시스템이 들어오면서 역설적인 일이 벌어졌다. 채점이라는 ‘업무’는 줄었는데, 정작 교육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아이를 알고, 아이의 생각을 들으고, 그 안에서 성장 가능성을 찾는 일—이 점점 배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는 거다. 마치 병원에서 의사가 진단 기계는 잘 다루게 됐는데, 환자 말을 귀담아 들을 시간이 점점 없어지는 것처럼.

자동화의 함정: 시간이 늘어났는데 왜 마음은 더 바쁠까

선생님들이 느끼는 이상함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AI가 채점 시간을 줄여줬으니 더 많은 학생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거라 예상했지만, 실제론 그렇게 안 됐다는 거다. 오히려 할 일이 자꾸 늘어난다. AI 시스템을 관리해야 하고, AI가 놓친 부분을 다시 확인해야 하고, 기계 오류를 정정해야 한다. 그 사이에 의미 있는 대화는 점점 옆으로 밀려난다.

심지어 더 묘한 건 이거다. AI가 “이 학생은 이 영역이 약합니다”라고 진단을 내리면, 선생님도 그 판단을 은연중에 받아들이게 된다. 기계가 내린 객관적 결론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선생님이 직접 아이의 글을 읽으면서 피드백을 쓸 때는 다르다. “아, 이 아이가 이 부분을 어려워하는 건 아마도…” 이렇게 가능성의 문을 열어둔다. 기계는 진단하고, 선생님은 이해한다. 둘은 다르다.

이게 문제인 이유는, 우리가 자동화의 편리함에만 집중하다 보면, 결국 교육에서 가장 소중한 것—아이 개개인을 정말로 아는 관계—를 조용히 포기하게 될 수 있다는 거다. 아무도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학생이 선생님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며 대화하는 교실 장면

자주 묻는 질문 (FAQ)

Q. 그럼 초등학교에서 AI 채점을 안 쓰면 되지 않나요?

일부 교사들이 여전히 AI 채점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보도가 있지만, 시스템 도입이 진행 중인 학교들에서는 현실적으로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문제는 거부가 아니라, 도입된 도구를 어떻게 교육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활용할 것인지에 있습니다.

Q. AI 채점이 모두 부정적인 건가요?

아닙니다. AI는 객관적 기준(맞춤법, 사실 확인, 구조)을 빠르게 처리해서 선생님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것이 진짜 역할입니다. 문제는 이 편의성이 학생과의 의미 있는 피드백 대화를 밀어낼 때 생깁니다.

Q. 결국 선생님들이 해야 할 일은 뭔가요?

AI가 기본적인 검사는 해주도록 하되, 정말 중요한 부분—아이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가능성을 찾아주는 피드백—은 절대 기계에 맡기지 않는 것입니다. 도구를 쓰되, 관계는 포기하지 않는 균형이 필요합니다.